출근 전 대기·이동시간 '무급'… 전직 근로자들 집단소송
한화, "관할권 정리일 뿐…위법행위 인정 아니다"
법원 "CAFA 요건 충족"…최소 500만달러 규모로 확대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제공
한화그룹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사진=한화오션 제공

[서울와이어=최찬우 기자] 한화가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Philly Shipyard)가 현지 근로자들로부터 임금체불 혐의로 집단소송을 당했다. 피고 측은 사건을 연방법원으로 이관해 대응에 나섰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며 본안 심리에 착수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 동부 연방법원은 ‘한화 필리 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Inc.)’가 제기한 사건 이관 신청을 받아들이고 주법원에서 제기된 집단소송을 연방법원에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무급 업무'로 집단소송 직면

해당 사건은 한화 조선소에서 일했던 전직 근로자 아이린 리베라(Irene Rivera) 씨가 중심이 되어 제기한 것으로, 근로자 수백여 명이 관련된 최소 500만달러(약 67억원) 규모의 임금체불 혐의가 핵심이다.

소장에 따르면 리베라 씨는 조선소에서 시간제로 일하면서 매일 아침 보호장비(PPE)를 착용하고 작업장까지 걸어가야 했고 조간회의를 위해 사전에 대기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처럼 업무 시작 전후에 반복적으로 이뤄진 일련의 ‘필수 활동’들을 근무 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원고는 주장했다. 이러한 활동이 반복된 시간은 하루 수십 분에 달했으며 주당 40시간 초과 시에도 초과 수당 없이 무급으로 처리돼왔다고 원고는 지적했다.

리베라 씨는 이 같은 회사 정책이 펜실베이니아주 최저임금법(PMWA)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자신을 포함한 조선소 전·현직 시간제 근로자 약 100명 이상의 집단을 대표해 소송을 제기했다. 

법률상 4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 대해서는 시간당 1.5배의 초과 수당이 지급돼야 하는데 회사가 무급 시간을 제외하고 주당 40시간을 산정했기 때문에 많은 근로자들이 오버타임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원고 측은 소장에서 “회사가 명확히 지시한 일과 관련된 활동이므로 이 모든 시간은 '업무 시간'으로 간주돼야 한다”며 “회사의 공통적인 임금정책 및 근태기록 체계가 주법을 위반했음을 입증하겠다”고 밝혔다.

이관 신청서(Notice of Removal) 본문 1페이지. 자료=미 동부펜실베이니아 연방지방법원
이관 신청서(Notice of Removal) 본문 1페이지. 자료=미 동부펜실베이니아 연방지방법원

◆이관 신청 수용…연방법원서 다룬다

한화 필리조선소가 직면한 이번 임금소송은 당초 펜실베이니아 주법원(필라델피아 카운티 법원)에서 시작됐지만 피고 측은 이를 연방법원으로 옮겨줄 것을 요청하며 ‘이관 신청서(Notice of Removal)’를 제출했다. 연방법원은 이를 받아들이며, 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은 이 사건이 ‘집단소송 공정법(CAFA)’의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CAFA는 2005년 제정된 연방법으로 일정 요건만 충족된다면 주법원에 제기된 집단소송이라도 연방법원이 직접 심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한화 측이 제출한 이관 사유는 세 가지다. 먼저 당사자 간 ‘최소한의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조선소는 펜실베이니아 법인이지만 소송에 참여한 근로자 중 일부는 타주 거주자로 확인됐다. 다음 소송 대상 인원이 100명을 초과해 CAFA의 요건을 충족한다. 마지막으로 청구 금액이 500만달러(약 67억원)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같은 주장을 수용하며 “사건의 규모와 법적 쟁점을 고려할 때 연방 차원의 심리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본 소송은 더 이상 주법원이 아닌 펜실베이니아 동부 연방지방법원에서 본격 심리에 돌입하게 됐다.

◆이관은 방어권 행사…"위법 없었다"

피고 한화 필리조선소 측은 이번 이관 신청서를 통해 소송의 관할권 문제를 먼저 다뤘다. 이로써 앞으로 본안 심리에서는 ▲미지급 시간의 정의 ▲정책의 통일성 ▲고의성 여부 ▲지급 거부에 대한 회사의 정당성 등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회사 측은 신청서에서 “이번 절차는 관할권 정리에 불과하며, 본 사건과 관련한 책임이나 위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본안 심리에서 모든 법적 방어 수단을 행사하겠다”고 입장을 밝히며 치열한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이 사건은 한화그룹이 북미 방산 및 조선 시장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첫 대규모 법적 마찰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문제의 조선소는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이 지난해 12월 공동 인수한 이후 처음으로 불거진 소송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원고 측은 소장을 통해 “2024년 말, 한화가 노르웨이 Aker ASA로부터 조선소를 인수하면서 법인명이 'Philly Shipyard'에서 'Hanwha Philly Shipyard'로 변경됐다”고 명시했다. 한국 조선업에서 대미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이 같은 노무 리스크도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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