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지연 끝에 송환 요청 기각…공소시효·도주 증거 쟁점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서울와이어=황대영 기자] 미국 뉴저지주(州) 지방법원이 지난 6일(현지시간) 한국 정부가 요청한 스티븐 리(한국명 이정환)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한 송환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 제6조가 명시한 공소시효 조항에 따라, 해당 범죄가 미국법상·한국법상 모두 시효를 초과했다”며 “피청구인이 범죄를 피하려 도주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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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리는 1999~2005년 론스타 펀드와 한국 자회사에서 경영을 총괄하던 인물로, 2000년 12월부터 2004년 10월까지 약 340만 달러(약 45억원)를 허위 컨설팅 비용 청구 방식 등으로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2005년 5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귀국한 그는 이후 뉴저지에서 거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2010년 피해 회사와 민사 합의를 체결했다.
그가 론스타에서 추진한 대표적 사건은 외환은행 헐값 매입이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했고, 2012년 2월 하나금융에 3조90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었음에도 론스타는 2012년 11월 금융위원회가 매각 승인 과정을 고의로 지연해 손해를 입었다며 국제투자분쟁 해결절차(ISDS)를 제기했다. 2022년 8월 31일 ISDS 중재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2억165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이에 불복해 중재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키맨은 론스타코리아 대표로 재직한 스티븐 리다. 사법당국은 2006년, 2011년, 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실제 범죄인 인도 청구는 2023년에야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스티븐 리는 2005년 이후 줄곧 미국에서 신분을 숨기지 않고 생활해 왔다.

재판부는 한미 범죄인 인도조약 제6조를 근거로 판결을 내렸다. 조약은 “요청국의 범죄가 청구국(미국)에서 동일하게 범해졌을 경우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송환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미국 연방법상 횡령죄의 공소시효는 5년, 한국법상은 7년이다. 재판부는 범행 종료 시점(2004년 10월)으로부터 양국 모두에서 시효가 이미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또한 한국 정부가 주장한 ‘도주에 따른 시효 정지’도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문은 “리 씨가 한국을 떠난 것은 사업상 귀국일 뿐, 수사·재판을 회피하기 위한 은신이나 위장 활동의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그는 한국 검찰 조사에도 협조했고,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거주했다고 명시했다.
이번 사건은 2023년 3월 구속 후 보석으로 풀려난 리 씨의 ‘특별한 사정(special circumstances)’이 이미 법원에서 인정된 사례다. 당시 보석 결정의 근거도 17년이라는 장기간의 송환 지연이었다. 법원은 이 지연이 “송환 절차의 긴급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주목할 점은 이 사건과 동일 혐의에 대해 과거 이탈리아 정부가 한국의 송환 요청을 거부한 사례가 있다는 점이다. 이탈리아 법원은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송환 불가 결정을 내렸고, 미국 법원도 이를 간접적으로 고려했다. 판결문은 “외국 주권국가의 결정이 송환 불가 사유 판단에 일정한 함의를 준다”고 언급했다.
한국 측은 범행 직후부터 영장을 재발부하며 공소시효가 정지됐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재판부는 “단순한 영장 재발부는 ‘적극적 송환 노력’으로 볼 수 없다”며 배척했다. 또한 피청구인이 범죄 후 해외로 이주했더라도, 도피 의도가 없고 생활을 은폐하지 않았다면 시효 정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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