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사실관계·법적 요건 부족” 판단

[편집자주] 서울와이어는 비즈앤로(Biz&Law) 코너를 통해 한국 기업이 전 세계를 누비면서 벌어지는 각종 비즈니스 소송을 심도 깊은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생소한 해외 법적 용어와 재판 과정을 알기 쉽게 풀어내 국내 산업계가 마주한 글로벌 법적 리스크를 분석하고, 향후 전망까지 예측하고자 합니다.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 생산 라인.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HMMA) 생산 라인. 사진=현대자동차

[서울와이어=황대영 기자]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하 현대차)을 상대로 제기된 인종차별·강제노동 민사소송이 기각됐다. 이 소송은 흑인 및 비백인 노동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인권 침해를 주장하며 총 1억3300만 달러(약 1852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으로,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미국 남부 제조업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앨라배마주(州) 중부 지방법원은 현지시간 14일 이 사건에 대해 ‘사전 판단 없이 각하(without prejudice)’ 결정을 내리며 소송을 종결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당장 법적 리스크를 피했지만, 원고가 사실 보완을 통해 다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평가다.

이번 소송은 지난 6월 16일 미국인 그레고리 켈리가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원고는 현대차 품질관리·엔지니어·IT 직군에 지원했음에도 불합격 처분을 받았고, 이는 개인적 무능이 아닌 “구조적 인종차별과 블랙리스트 운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소장에서 원고는 “현대차와 그 협력사, 앨라배마주 법무부와 노동국을 포함한 총 458개 정부기관이 공모해 흑인, 여성, 장애인, 고령자, 이민자를 일괄적으로 차별했다”고 명시했다. 

특히 앨라배마의 악명 높은 반이민법 ‘HB-56’ 및 ‘HB-658’(소위 ‘주홍글씨법’)이 이러한 차별을 제도화했으며, 현대차는 이 법에 기댄 채 이력서에 포함된 사소한 전과 기록, 병력, 이민 상태 등을 이유로 대규모 배제를 조직화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지시간 14일 앨라배마 중부 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본안 심리 없이 각하했다. 사진=앨라배마 중부 지방법원
현지시간 14일 앨라배마 중부 지방법원은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본안 심리 없이 각하했다. 사진=앨라배마 중부 지방법원

원고는 현대차가 교도소 재소자 노동력, 미성년자 고용, 외국인 비자 사기 등을 통해 값싼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왔고, 이 과정에서 비백인 노동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전략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고용차별이 아니라 조직범죄수준의 공모와 인권침해라는 설명이다.

그는 현대차와 그 공급망 전반에 걸쳐 “고용 불가 명단”, 즉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며, 여기에 등록된 개인은 어떠한 직종에도 접근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명단은 채용 절차에서 자동으로 적용되며, 원고 본인 역시 반복적인 탈락을 경험했다는 설명이다.

원고는 소장에서 ▲TVPA(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 ▲RICO법(조직범죄 방지법) ▲미국장애인법(ADA) ▲공정노동기준법(FLSA) ▲이민법(INA) ▲KKK법(인종차별 공모 방지 조항) 등 총 18개 연방법 및 주법 위반을 열거하며, 손해배상 3330만 달러, 징벌적 손해배상 1억 달러, 기타 법정 비용 및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번 소송이 “사실관계의 구체성과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본안 심리 없이 ‘각하’ 판정을 내렸다. 이는 소송 자체를 기각하되, 향후 원고가 내용을 보완해 다시 소를 제기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조치다.

법원은 “현대차가 구조적 차별을 의도했는지에 대한 구체적 증거와, 관련 법 위반이 개인에게 실질적 피해를 유발했다는 인과관계가 부족했다”며, 직접적 사실 주장 및 객관적 자료 부족을 지적했다. 원고는 지난해에도 비슷한 내용으로 소를 제기한 바 있으며, 향후 보완된 주장을 다시 펼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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