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주요 산업 전반은 이미 AI(인공지능)를 바탕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산업계에는 AI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AI를 어떻게 사용할지를 말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이정동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14일 ‘제6회 서울와이어 혁신포럼(2025 SWIF)에서 'AI시대, 혁신 이끄는 리더의 그랜드 퀘스트: 한국 산업의 혁신을 꿈꾼다'를 주제로 이렇게 강연했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 AI는 이제 전문가만의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 혁신 기술이 됐고, 더 나아가 인류의 사회구조를 바꾸는 문명적 힘이 돼가고 있다.
전세계의 화두가 된 AI 혁명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 가져다준 거인 프로메테우스에 비견되곤 한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져다준 불 덕분에 인류 문명은 번성했지만 동시에 불로 인해 문명이 파괴되는 비극도 겪었다. 마찬가지로 AI도 인류가 더 빠른 AI 개발 경쟁에 몰두하다 파괴적으로 이용될 수도 있고, 혹은 AI가 축적된 지식으로 절대적 전능한 존재가 돼 인류를 장악하는 디스토피아를 불러올 수도 있어서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세계 주요국들은 AI 혁명의 거대한 물결에 앞다퉈 올라타면서 AI 패권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AI 3대 강국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전속력으로 AI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한국은 AI가 실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힌다. 삼성의 AI 팩토리, 현대차의 자율 주행차와 로봇, SK그룹의 디지털 트윈, 네이버·카카오의 AI 데이터센터 등을 두루 갖춘 한국은 소프트웨어와 제조 역량을 결합해 공장에서 로봇을 구동하면 바로 ‘피지컬AI’의 모델이 된다.
최근 방한 이후 한국인에게 ‘깐부’가 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한국의 비옥한 AI 인프라를 높이 평가해 26만장의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주기로 했다. 황 CEO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한국은 소프트웨어, 제조업, AI 역량 등 3가지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3가지를 다 가진 나라가 몇이나 되나”라고 반문했을 정도다.
민간기업의 세계 최고 기술 수준에 발맞춰 정부도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적극적으로 AI 전략을 뒷받침하고 있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AI 예산은 약 10조원으로 전년보다 3배가 넘는다. 여기에 국민성장펀드 AI 투자 30조원, 세계 최고 투자사인 블랙록을 비롯 오픈AI, 엔비디아, 아마존웹서비스(AWS) 등과 정부간 MOU도 맺었다.
한국은 AI를 경제의 돌파구로 삼아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어젖히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향한 여정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전력난, 인재난, 각종 규제 등 풀어야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기업들이 깔아둔 제조업과 기술 인프라로 글로벌 기업들과의 'AI 동맹'이 가능했다면, 앞으로는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신속한 정책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장 가장 시급한 현안은 전력 확보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 ‘블랙웰’의 소비전력은 칩당 약 1.4㎾로 추정된다. 이 칩 26만 장을 활용하기 위한 AI 데이터센터와 냉각 장치장비 등까지 포함하면 1GW에 육박하는 전력이 필요하다는 추산이 나온다. 국내 전력 소비량의 1%에 해당하며, 초대형 원전 1기가 생산하는 전력에 맞먹는다. 오픈AI, AWS 등 미국 빅테크들이 한국에 짓고 있는 데이터센터까지 감안하면 필요한 전력은 더 늘어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폭염과 혹서가 일상화하면서 전력 예비율을 걱정하는 상황인데 ‘전기 먹는 하마’인 AI 시대를 견딜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력 생산과 함께 중요한 송전 배전망 구축도 ‘님비’의 높은 벽에 가로막히기 일쑤다. 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인가를 받은 곳 절반 이상이 주민 민원 등으로 공사가 지연됐다. 최근 서울대 시흥캠퍼스의 AI컴퓨팅센터 설립은 전자파 우려 등으로 중단됐고, 경기도 고양이나 용인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전력 인프라 구축에 최소 6, 7년이 걸린다고 보면 정부 차원의 신속한 해결책이 절실하다.
잔력보다 더 ‘발등의 불’은 인재 확보다. 제 아무리 GPU와 데이터센터가 있은들 이를 다룰 인력이 부족하면 결국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우리의 교육 현주소는 주지하다시피 이공계 인재가 의대로 진학하거나 해외로 탈출하고 있다. 이공계 석·박사급의 43%가 부실한 보상, 연구 생태계 불만 등을 이유로 3년 내 해외 이직을 고려 중이라는 한국은행 보고서가 이달초 나왔다. 최고연봉 기준으로 해외 13년차는 37만 달러, 국내 19년차는 13만 달러라니 끌탕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중국은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앞세워 국내 기업은 물론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무차별 인재 영입을 시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국회 과방위 최수진 의원). 천인계획은 중국 정부가 해외 고급 과학기술인을 유치하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와 특혜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중국은 한국보다 최소 4~10배의 연봉, 70대 정년 연장, 수십억 연구비 지원 등 파격적 조건으로 한국 과학자들에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연구자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특임연구원 제도' 신설, 연구 성과에 대한 기술료 보상비율 상향, 'AI 스타펠로우십(인공지능 최고급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신설 등 과학기술 인재 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만, 해외 처우와 비교해볼때 창의적인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떠나기 전에 이들의 노력과 성과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보상하는 제도가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AI가 국가 경쟁력의 성장 엔진이자 안보 자산이 되면서 벌써부터 AI 기술력 편중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1세기 지정학은 데이터센터와 GPU 공급망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자국산 AI 기술(소버린 AI)을 보유하지 못할 경우 언어, 과학기술, 안보 종속으로 이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미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할지, 아니면 제조기술과 공장, 데이터센터만 제공해주다 3강 언저리에서 탈락할지를 가르는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 분명한 점은 한국이 글로벌 AI 기술 경쟁 레이스에서 정부·기업·학교가 손잡고 전속력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효영 서울와이어 편집국장
- [제6회 SWIF] 이정동 교수 "AI 시대의 혁신 위해선 현장 전문가 중심 재편 중요"
- [제6회 SWIF] 국가 경쟁력의 열쇠 'AI'… 패권경쟁 해법 제시
- [제6회 SWIF]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AI 3대 강국 도약… 사람 중심 생태계 만들어야"
- [제6회 SWIF] 서왕진 "대한민국, 나락 위기 벗어나… AI로 새 출발 준비할 때"
- [제6회 SWIF] 전창협 서울와이어 사장 "시대의 화두 AI⋯ 확고한 게임체인저"
- 국내 경차 인기 하락…2년연속 10만대 못넘어
- 한강버스 '애물단지' 되나…서울시, 멈춤사고 사과
- 삼성전자, '오디세이 게임 스테이션' 팝업 체험존 운영
- 연간 전기차 판매 20만대 돌파…'친환경차 선진국 도약'
- 이 대통령 "친기업·반기업 무의미…관세협상 방어 잘해냈다"
- 현대차 뉴 아반떼 N TCR, '2025 TCR 월드투어' 최종전 우승
- 한·미 원자력 파트너십 강화, 국내 원자력 도약 '호기'
- 또 불거진 카카오 과로 논란…노동부, 카카오 근로감독 착수
- 마침내 낮춰진 자동차 관세, 현대차그룹 질주 '탄력'
- 현대차·기아, 공급망 탄소중립 전환 위한 민관 상생협력 협약 체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