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와이어 최석범 기자] 매년 3월만 되면 금융권 기사의 한 꼭지를 장식하는 인사들이 있다. 바로 4대 금융그룹의 사외이사들이다. 경영진 감시·견제 제대로 못하면서 억대연봉을 챙기는 게 이유다.
올해도 어김없이 사외이사들이 언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작년 4대 금융그룹(KB·신한·우리·하나) 이사회가 의결한 안건 135건 중 100%가 찬성으로 의결되면서다. 사외이사가 거수기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연임 사외이사가 전체의 3분의 2에 달한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4대 금융그룹은 이번 정기 주총에 총 25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올렸는데 이 가운데 18명(72%)가 현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에 관한 적격성 문제도 불거졌다. 재선임 명단에 오른 사외이사 가운데 라임펀드 환매사태 때 사외이사를 맡았던 인사가 다수 포함된 게 화근이 됐다. 대규모 금융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들을 선임하는 게 맞냐는 지적이 나왔다.
급기야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신한·하나·우리금융 연임 후보의 선임에 반대 의사를 권고하기도 했다. 금융그룹의 대형사고와 관련해 집단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넘어간 만큼, 유임 자격이 없다는 취지였다.
ISS는 우리금융보고서에서 "정찬형(사외이사 연임) 후보는 손태승 회장의 법적 우려를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사회 구성원으로 있는 동안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사외이사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에게 지급되는 억대 급여의 출처가 금융그룹인 만큼, 이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다. 급여를 주는 회사에 쓴소리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사외이사의 급여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하는 건 어떨까. 독립성 확보를 위해 과도한 급여 대신 교통비와 식비, 자문비 정도만 받는식으로 바꾸는 방안이다. 연임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CEO와의 학연, 지연 등의 정보를 포함해 사외이사 후보자의 출결사항, 이사회에서의 질문 횟수, 발언시간 등 객관적인 지표를 주주총회에 보고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사외이사 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중대 금융사고 발생 때 사외이사의 책임을 지우는 방안과 임원추천위원회에 외부기관이 파견한 인사를 포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높일 수 있는 만큼, 고려할 가치가 크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감시·견제할 마지막 보루다. 사외이사 제도가 '거수기' 오명을 쓰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그룹간에 지혜가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