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자사주 취득 규모,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
3차 상법 개정안 국회 통과 가시권
자사주 기반 EB 발행 등 활용 사례 늘어

강남 테헤란로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강남 테헤란로 전경.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와이어=노성인 기자] 당정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인 가운데 상장사 간 셈법이 엇갈리고 있다. 자사주 취득 규모가 확대 중인 가운데 선제적으로 보유 자사수 소각하며 주주환원에 나서는 상장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동화를 위한 교환사채(EB)를 발행하거나 임직원 보상 등 경영 재원으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하반기 들어 지난 4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자사주 취득 규모는 올해 7조774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2조1217억원에서 3배 이상 늘었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3조9120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제외하더라도 크게 늘어난 셈이다.

공시 건수는 반대로 줄어들었다. 해당 기간 상장사들의 자사주 취득 공시 건수는 총 65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기간 157건 대비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쳤다. 과거 자사주 취득은 경영권 확보 수단 등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취득이 곧바로 소각으로 이어지는 등 주주환원에 쓰이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자사주 소각을 둘러싼 상법 개정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지난 7월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사주를 취득일 기준 1년 내 의무 소각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취득 후 6개월 이내,김현정 민주당 의원도 3년 이내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한 법안을 잇달아 냈다. 해당 법 개정안에는 이미 보유한 자사주도 소각 대상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기존 보유 자사주를 소각하는 사례가 확대되고 있다. 올해 들어 자사주를 소각한 기업은 208곳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에서 120곳, 코스닥에서 88곳이 각각 자사주를 소각했다. 이는 177곳이었던 지난해 수치를 이미 넘어선 수준이다.

자사주 소각액도 8월 말 기준 약 5790억 원으로, 지난해 4809억 원을 이미 넘어섰을 뿐 아니라 2023년(1175억 원) 대비 4배 이상 뛰었다.

올해 대규모 자사주 소각을 공시한 종목들로는 삼성전자(약 3조487억원), HMM(2조1432억원), KB금융(1조9800억원), 신한지주(1조7000억원), 현대차(9160억원) 등이 있다.

이와 반대로 자사주 처분 움직임도 활발하다. 7~8월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자사주 처분 공시는 95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45건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달 들어서도 4일간 10곳이 자사주 처분 사실을 알렸다.

특히 자금조달을 이유로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교환사채(EB) 발행을 공시한 기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8월 한 달간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하는 EB 발행을 공시한 기업이 8곳으로 집계됐다. 전월(3곳)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자사주 기반 EB는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과 달리 신주 발행을 수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채권자가 교환권을 행사할 경우 자사주와 달리 의결권이 되살아나 지분 희석 효과가 발생해 최근 밸류업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활발하게 자사주 소각을 이행한 이력이 있는 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거 자사주 매입뿐만 아니라 소각 이력이 있는 기업이 추가적인 소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한다”라면서 “전년 대비 순이익 확대가 예상되는 등 안정적인 이익을 기반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이 지속될 수 있는 기업을 스크리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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