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유동성위기·주축계열 이탈 '뚝심'으로 지탱
'여전사' 수식어… 현대가문 다툼 속 경영권 방어
엘리베이터 등 주축 계열사 중심 명가재건 가속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올해 현대엘리베이터를 앞세워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사진=현대그룹 제공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올해 현대엘리베이터를 앞세워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사진=현대그룹 제공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지 올해로 19년째다. 그는 수많은 우여곡절 겪어왔고 현대상선(현 HMM) 등 주축 계열사들이 떨어져 나가는 상황 속 미래 버팀목이 될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켜냈다.

앞서 그는 2003년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 타계 후 혼란이 지속된 가운데도 ‘뚝심경영’과 ‘여전사’ 같은 추진력을 앞세워 그룹의 명맥을 이어왔다. 최근 현 회장은 그룹의 상장사인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무벡스를 중심으로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평범한 주부에서 재계 ‘원더우먼’으로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다섯 번째 며느리이자 2003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정몽헌 회장의 아내다. 그는 엘리트 집안 자제로 일찍이 정주영 창업주의 눈에 들어 며느리로 현대가에 합류했다.

평범한 주부에서 남편의 타계로 혼란의 빠진 그룹 총수에 오르며 경영 일선에서 사업을 총괄해왔다. 취임 후 초기 그룹 분위기 수습에 주력했다. 현대그룹 가문 형제들의 경영권 다툼 속에서 경영권을 지켜낸 것은 유명한 일화다.

총수로서 경영 능력을 입증한 셈으로 기업가 집안의 피를 물려받은 덕분으로 보인다. 현 회장의 부친은 국내 대표 해운사로 성장한 HMM 전신인 현대상선에 합병된 신한해운을 설립한 현영원 회장, 모친은 김문희 용문학원 명예이사장이다.

당시 여성의 사회활동이 제한적이던 시대 현 회장도 경기여고와 아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룹에 총수에 오른 뒤 그가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이사회 중심의 전문 경영인에게 힘을 실어줬다.

책임경영 체제로 그룹을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는 등 재계 15위까지 하락한 현대그룹 재건을 본격화했다. 2001년 채권단에 넘어간 현대건설을 되찾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결과는 실패로 끝났지만,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되는 저력을 보였다. 해외에서도 현 회장의 리더십을 주목했다. 

포브스가 매년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명 중 한국인으로서 2009년 당당히 79위에 이름을 올렸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선정한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에 선정됐다.

현 회장은 이후 그룹의 주축으로 대북사업을 수행한 현대아산 경영의 방향키를 돌렸다. 북한 금강산 관광 길이 막히면서, 관광 개발사업 무기한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한 선택이다. 

또한 남북관계가 윤석열 정부 들어 급격히 얼어붙은 만큼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는 이를 대신할 사업을 건설로 낙점했다. 올해 4월 주택 브랜드 ‘프라힐스(PRAHILLS)’를 론칭하고 국내 주택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올해 7월 현대엘리베이터 충주캠퍼스 이전을 기념해 열린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그룹 제공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올해 7월 현대엘리베이터 충주캠퍼스 이전을 기념해 열린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현대그룹 제공

◆숱한 위기 극복 뒤 명가 재건 본격화

현 회장은 이와 함께 현대엘리베이터를 미래 그룹의 중심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 유동성 위기 등 많은 고비에도 중심을 잃지 않았던 그가 현대그룹 부활을 위해 던진 승부수다. 

20년 가까이 그룹을 이끌며 ‘현다르크(현정은+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 현 회장의 그간 행보는 업계 이목을 끌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건설사업 관련 탄탄한 수요로 회사의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한다.

회사의 영업이익은 2019년 1362억원에서 2020년 15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도 1290억원 영업이익을 올렸다. 수주 잔액도 올 상반기 기준 1조9147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3600억원가량 늘었다. 충분한 일감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현 회장은 이에 맞춰 올해 7월 현대엘리베이터 본사를 1984년 창립 이래 처음 충주로 이전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는 회사의 2030년 글로벌 톱티어(Top-Tier) 도약을 목표로 그룹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충주는 그룹 부활의 거점 역할을 할 전망이다. 현 회장은 본사와 공장을 충주로 이전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도입하고 제품 경쟁력과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충주 이전을 기념해 열린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혁신만이 살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동시에 해외사업 확장 등의 내용이 담긴 미래비전을 내놨다. 해외사업 비중을 기존 20%에서 50% 상향해 톱티어로 도약한다는 목표다. 

현 회장은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차전지와 스마트 물류자동화사업을 담당하는 현대무벡스가 중심이다. 회사의 주력이 물류 자동화와 승강장안전문(PSD)인 만큼 현대엘리베이터와 시너지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내년은 정몽헌 회장 타계 20주기로 현 회장의 그룹 부활에 대한 의지는 남다르다. 그가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이전 기념식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약 2년만으로 앞으로 대외 행보가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 회장은 “엘리베이터를 건물에 갇힌 단순한 공간이 아닌 고객의 꿈을 이루는 모빌리티로 발전시켜 나갈 새로운 가능성을 찾겠다”며 “끊임없는 혁신만이 기업의 퇴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더욱 활발한 행보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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