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A 세부지침·가드레일 조항, 관련 기업들 셈범 복잡
국내 업계, 과도한 기업 '경영권 침해' 우려 목소리
최대 수출시장 중국 잃을 수도, 정부 '역할론' 커져

미국 정부가 최근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지원금(보조금) 관련 세부 지침을 공개했다. 세부지침이 공개되자 핵심기술 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에 셈법이 복잡해졌다. 사진=픽사베이
미국 정부가 최근 자국 내 반도체 생산 지원금(보조금) 관련 세부 지침을 공개했다. 세부지침이 공개되자 핵심기술 유출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등 국내 반도체기업들에 셈법이 복잡해졌다. 사진=픽사베이

[서울와이어 정현호 기자] 미국 정부가 최근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의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첨단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 신규 공장의 자국 유치와 관련 보조금 지급 등이 핵심이지만, 사실상 중국에 대한 견제목적과 국익에 초점이 맞춰져 국내 반도체업계의 고심이 깊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자국의 반도체 지원법을 바탕으로 재정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심사조건을 공개했다. 앞서 미국은 대규모 반도체 투자를 밝힌 기업들에 보조금 지원이라는 당근책을 예고했다.

당초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현지 공장 설립에 대해 세액공제 등 풍족한 인센티브를 받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금조달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세부 내용이 공개되자 분위기는 급격히 어두워졌다.

상무부는 최근 390억달러(50조원) 규모의 반도체법 보조금 신청 관련 ‘사전 의향서’ 접수를 시작했지만, 미국에 첨단 반도체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건설, 파운드리 공장 설립에 나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들 기업 입장에선 보조금 지급 관련 세부지침에 담긴 독소 조항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 정부가 공개한 지침에 따르면 경제 안보를 이유로 기업들에 생산시설이나 사업기밀 등을 공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생산시설 공개는 핵심기술 유출 등의 우려로 가장 민감한 부분이다. 또 미 상무부는 1억5000만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의 경우 현금 흐름이나 수익이 사전에 전망한 금액보다 많으면 초과 이익 일부에 대한 공유를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에 재무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기에 보조금 수령 시 앞으로 10년간 중국 등에 추가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의 가드레일 조항도 담겼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현재 중국에서 운영 중인 공장을 철수해야 하는 상황 등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국내 반도체 수출 최대 시장으로 미국의 요구가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황 악화 속 국내 반도체 업계는 보조금 신청에 대한 득실관계를 살피는 데 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권을 침해하고 첨단기술 유출 우려가 큰 독소조항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며 “중국과의 관계도 애매해질 수 있어 현재로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는 미국과 긴밀히 소통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와 관련 아직 나오지 않은 가드레일 세부규정 마련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미 관계당국과 협의해 나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당장 미 정부는 이달 추가로 가드레일 세부 조항 등을 발표할 예정이다. 초과이익 수준 및 공유방식과 중국 투자 관련 세부지침이 확정될 전망이다. 중국을 세계 반도체 수출의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도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미국 측에서 쏟아낸 인플레감축법, 인프라법, 원자재 안보 파트너십에 대한 대응과 관련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은 미·중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패권전쟁에 낀 입장으로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투트랙 전략’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번 세부지침이 반도체 제조능력 확장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게 업계 중론으로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선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이를 고려해 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우리 측 입장을 정리해 미 상무부 등 관련 당국에 전달할 방침이다. 

한편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이 조건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시행할 것”이라며 “우리는 백지수표를 쓰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도 기업 경영권에 대한 침해라는 비판이 나오는 등 상황이 반전될 여지도 남았다. 기업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부지침 확정 발표에 따라 보조금 신청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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