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례 흔들린 국회, 예산안마저 '정면 충돌' 조짐
예산안 법정기한 앞두고 협상 대신 정치 전략 부각
민주당, 필요 시 단독 처리 가능성 시사
'반대를 위한 반대'외치는 야당 일각 주장도 문제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 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국회에서 지난 5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와이어=정현호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제21대 국회에서 입법 권력을 쥔 이후부터 여야 간 오랜 관례들이 다소 흐트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상임위원장 배분 원칙에서부터 국정감사 진행 방식까지 기존 합의 구조가 흔들렸다는 비판인데, 특히 이재명 정부가 처음으로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도 민주당이 ‘합의 처리’ 관례를 깨고 단독 처리를 강행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물론 여당의 주장에 '대안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목소리만 키우는 야당일각의 편협주의도 협치실종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올해 국정감사가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예산 정국’에 들어갔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전날 예산안 공청회를 열었다. 

이어 6~7일 종합정책질의, 10~11일 경제부처 심사, 12~13일 비경제부처 심사를 진행한다. 이후 오는 17일부터 예산안 감·증액 논의의 핵심인 예산안조정소위가 본격 가동될 예정이다. 각 당의 이해관계와 정치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할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예산안의 법정 처리 시한은 매년 다음달 2일이다. 예년에는 여야 간 협상이 지연되면서 기한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근본 전제는 ‘합의 처리’라는 정치적 관례였다. 

하지만 상황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제1야당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 편성한 첫 예산안이라는 상징성에 주목하며 정책 방향과 실효성 전반을 정밀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지역사랑상품권, 농어촌 기본소득 등 현금성 복지 항목에 대한 대폭 삭감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이재명 정부의 대표 정책 예산을 반드시 줄이려 할 것”이라며 “예년보다 예산안 처리가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반면 민주당 내부에서는 상황에 따라 여야 협의 대신 단독 처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국회 166석을 점한 민주당은 다른 정당의 협조 없이도 예산안 단독 처리가 가능한 구조다. 

실제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기한 내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예산 처리 속도전을 예고했다. 

문진석 원내운영수석부대표 역시 라디오 인터뷰에서 “야당과 합의가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면 표결 처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해 단독 처리 가능성을 사실상 공식 언급했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21대 국회에서 이어져 온 ‘관례 파기’ 논란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선 결과를 앞세워 국회 운영위·법사위 위원장을 동시에 가져간 점 ▲법사위에서 야당 간사 선임안을 표결로 무산시킨 사례 ▲통상 국정감사에서 인사말만 하고 퇴장하던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앉혀 질의를 이어간 점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민주당 출신 인사 역시 “최근 몇 년 사이 민주당의 의회 운영 방식이 강경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예전 같았으면 합의를 위해 막판까지 절충점을 찾으려 했겠지만, 올해는 그 가능성이 뚜렷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 전선이 여야의 힘겨루기와 정치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는 충돌 지점이 된 가운데 정기국회가 관례 회복의 분기점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단독 처리 국회’로 오점을 남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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