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빌라 재건축, 공사진행률 40% 수준에서 사업 중단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시공사 갈등으로 셧다운 현실화
중대재해처벌법 향한 의문… "신속한 개정이 필요하다"
건설업계 "중대재해법 무섭다… 합리적 기준 마련돼야"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동산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건설업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춘천 레고랜드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가 부동산 위축을 부채질 하고, 주택 가격이 추락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심각했던 건설사의 줄도산 사태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미분양 문제는 물론 공사지연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건설업계의 실상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고정빈 기자] 최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자 건설현장 곳곳에서 시공사와 조합간 공사비 갈등이 적지 않게 일어나는 모습이다. 지난해 수개월 동안 공사가 멈춘 둔촌주공 재건축사업을 비롯해 제2의 둔촌주공 사태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현장도 나온다. 아울러 의견이 엇갈리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여전히 건설업계의 앞길을 가로막는 분위기다.
◆양보 없는 갈등, 셧다운 우려 심화
8일 정비업계예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방배센트레빌프리제’(신성빌라 재건축) 현장이 지난달 멈췄다. 2021년 12월 착공해 올 10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해당 현장은 공사 진행률 40% 수준에서 진행이 중단됐다.
신성빌라 재건축 조합은 2020년 11월 동부건설과 3.3㎡당 공사비 712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시공사인 동부건설이 설계 변경과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증액안을 제안했으나 조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갈등이 심화됐고 셧다운이 현실화됐다.
서울 서초구 재건축 최대어로 꼽히는 ‘래미안 원베일리’도 조합과 시공사간 갈등으로 공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삼성물산은 최근 조합에 공문을 보내 공사기간 2개월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올 8월 말 입주예정이었던 일정이 또 지연된 셈이다.
신반포3차와 경남아파트 등을 재건축하는 래미안원베일리는 지상 최고 34층, 23개 동, 2990가구 규모로 지어진다. 도급 계약서상 공사비만 1조1277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8월부터 원베일리 조합과 공사비 증액 협상을 진행했으나 아직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
삼성물산은 조합 측의 요구에 따라 품질향상을 위한 차별화 설계를 반영했고 추가 공사비 1560억원을 요청했다. 당시 조합 집행부는 추가 공사비 지급을 결정했지만 일부 조합원이 비대위를 통해 지급 반대에 나서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조합원 간 소송전으로 이어져 조합장의 직무가 정지됐고 부조합장은 해임돼 애꿎은 삼성물산만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사태가 악화되자 삼성물산은 결국 공사비 증액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일반분양 대금이 들어오는 통장의 사업비 인출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합이 용역비 등 사업비를 통장에서 인출하려면 시공사 인감이 필요한데 이를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사 감리업체 두곳이 조합에 미납 감리용역비 31억원을 지급하라고 요청했고 미납금을 내지 않으면 현장에서 철수하겠다고 통보했다.
마포구에 분양되는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공덕1구역 재개발사업)는 시작도 못했다.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는 GS건설과 현대건설이 공동 시공을 맡았고 지난해 6월 착공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합이 시공사업단의 공사비 증액 요구에 응하지 않아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GS건설이 시공을 맡은 ‘신반포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도 4700억원 상당의 공사비 증액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건설업게 관계자는 “지난해 둔촌주공 공사가 멈춘데 이어 전국 현장 곳곳에서 조합과 시공사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셧다운 위기에 빠진 상황”이라며 “어느 한 쪽도 양보하기는 쉽지 않지만 공사와 입주가 지연되면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적정선에서 서로 양보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말 많은 중대재해법, '혼란 가중'
잇따른 건설현장 사고와 책임감 제고를 위해 마련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중대재해법 시행 당시 기준이 모호하고 처벌 대상이 명확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내용이 복잡해 모든 사항을 인지하기에는 너무 가혹스럽다는 불만도 속출했지만 결국 중대재해법은 예정대로 시행됐다.
하지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건설현장 사고는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건설공사 안전관리 종합정보망(CSI)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전체 건설사고 사망자는 총 5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7명)보다 11명 줄었으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준이 모호하다는 비판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나온다. 처벌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의 경우 경영책임자가 형사처벌 대상임에도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지정된다. 의무 이행 기준이 포괄적이고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오면서 중대재해법을 향한 의견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수사기관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11건의 사건을 기소하는 데까지 평균 237일(8개월)이 소요됐다.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 책임자의 특정과 혐의 입증이 어려워 수사가 지연된다는 설명이다.
경총은 중대재해법을 산업안전보건법과 일원화하고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면 기업에 큰 부담을 주는 형사처벌 규정 삭제를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법 이행 주체와 의무 내용을 명확히 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적용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중대재해법의 신속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처벌과 감독을 통한 타율적 규제만으로는 중대재해 예방에 한계가 있는 만큼 노사가 함께 책임에 기반한 자기 규율로 예방 역량을 키우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처벌대상과 수준 등 제제방식을 개선하고 올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의 행보가 이해가되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최명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아직 집행되지 않은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처벌법의 성격인 중대재해법은 재판 결과가 누적된 이후에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울산·경남 노동단체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경총 경영책임자 책임 축소·처벌 완화 등 개정 요구, 국민의힘의 처벌 완화 등 개악안 발의, 정부의 완화 지시 등이 이어졌다”며 “현재 사업장에서 중대재해법 시행 효과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중대재해법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중대재해법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중대재해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건설업계는 어느 주장에 맞추고 어떤 대응을 계획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지금처럼 유지되면 처벌이 두려워 사업 운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기준이 바뀐다면 또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해야 때문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을 두고 말이 많다. 물론 안전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는 누구든 공감하고 당연하게 여겨야 할 일”이라며 “다만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갈수록 혼란이 커진다. 강력한 처벌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도 맞다. 양측 입장이 모두 이해돼 합리적인 결과만 나오길 바라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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