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 집권 이후 패권 경쟁 심화...접점이 안 보인다
미 인플레감축법·반도체법으로 대(對) 중국 포위망 법제화
한국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몰아치는 '차이나 리스크'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내 경제상황이 애매한 위치에 서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국내 경제상황이 애매한 위치에 서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우리나라 안보·경제와 가장 밀접한 두 국가는 중국과 미국이다. 그 두나라의 글로벌 패권경쟁이 가열하면서 우리의 안보와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국제 공급망 재편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기술 굴기와 보호무역주의, 자원 무기화는 우리 경제와 수출의 등뼈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배터리, 자동차 ,유통 등 모든 산업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서울와이어는 '차이나 리스크'에 직면한 우리 경제의 실상과 향후 전망 , 대책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서울와이어 고정빈 기자]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난 30년간의 경제 성장으로 힘을 키운 공산당 1당 지배체제의 중국은 세계질서를 재편하겠다고 나섰고,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헤게모니를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1위와 2위 교역국인 두 나라의 싸움 틈바구니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틀어지기 전에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즉,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기대는 양다리 걸치기로 국익을 추구했으나 이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어느쪽도 포기할 수 없을만큼 우리 경제엔 중요하다. 이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묘수'를 찾아야 한다.

◆ 가열하는 미중 갈등…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은 시진핑이 지난 2013년 중국 국가주석으로 등극한 이후 본격화했다. 이 시기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와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정부와 겹친다.

시진핑은 개혁개방 이후 경제발전으로 강대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덩샤오핑 이후의 '불문율'이었던 은인자중 속 실력을 키우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중국몽'을 전면에 내세웠다. 중국몽은 과거 당나라, 명나라, 청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군사와 경제에서 중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세워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야심이다. 

중국의 '굴기'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이 뒷받침한다. 중국은 최근 30여년간 WTO 체제하에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중국의 지난 2009년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12%, 2010년에는 41%, 2020년에는 70%까지 격차를 좁혔다. 중국은 이미 지난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유일하게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됐다.

경제에서 자신감을 얻은 중국의 시진핑은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대신 다극체제를 지향하며 '일대일로'를 내세워 글로벌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왔다. 무력을 앞세워 남태평양에서의 영토분쟁을 완력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양안통일(대만통일)을 지상과제로 내세웠다. 사드 사태에서 보았듯 안보 등에서 일방적인 '핵심이익'을 설정하고 이를 침해하는 국가에 대한 경제적, 군사적 보복을 서슴지 않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는 국제규범에 기반한 '자유무역질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자국 주요 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 지급, 자국 시장의 선택적 개방, 해외 기술 탈취 등으로 글로벌 무역질서를 교란해왔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이 결국 칼을 빼들었고, 트럼프 정부의 무역 보복으로 양국 간 긴장은 고조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340억달러(45조) 규모 중국제품을 대상으로 관세를 25%로 인상했다. 엄청난 중국과의 무역적자를 미국의 부(富)가 그만큼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단순한 무역규제에 그치지 않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패권을 막기 위해서는 첨단 산업의 봉쇄와 중국에 대한 부품 소재 의존 탈피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미국과 유럽 등 자유민주세계의 우방들을 끌어들여 미국 중심으로 공급 체인을 다시 구축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반도체동맹(Chip4),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내재화 등이 모두 대 중국 포위망을 겨냥한 것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 레이 달리오는 지난달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미중 양국이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면서 "양측은 경제 디커플링(탈동조화)이나 군사적 대립이 모두 재앙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 두 거인이 벼랑끝 6인치 옆에서 멱살잡이를 하며 서로를 위협한다”며 “양국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전세계에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중갈등으로 산업계 기업들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미중갈등으로 산업계 기업들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진=서울와이어 DB

◆ 점증하는 '차이나 리스크'… 선택에 몰린 한국경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그 자체로 한국에게는 엄청난 리스크다. 국가 생존이 달린 안보와 경제에서 두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1, 2위 경제대국인 두 나라에 대한 우리의 무역의존도는 40%에 육박한다.  두 나라의 패권 경쟁이 어떻게 전개되느냐가 우리 경제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가 위기에 직면했다. 바이든 정부가 만든 미국 반도체법은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가로 보조금을 받을 경우 생산, 영업, 이익 정보에 대해 미국 정부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반도체 업체들에 치명적인 것은 소위 가드레일 조항이다. 이는 미 반도체법의 혜택을 받은 기업은 중국에서 향후 10년간 반도체 생산시설을 증설할 수 없고, 첨단 기술도 적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에 달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거대한 반도체 생산 기지를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투자와 생산에 손발이 묶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장기적으로 중국 시장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다. 

미국 IRA도 부담이다.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으려면 예컨대 배터리의 경우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핵심 광물의 40%를 조달해야 하고 부품의 경우 북미  지역에서 50% 이상 생산해야 하는데 이는 중국에 대한 광물과 소재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추세는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런 흐름에 올라타고, 중국의 산업 무기화에 대비하기 위해선 부품·소재의 탈중국이 시급하지만 별 진척이 없다. 현재 중국 의존도가 80% 이상 되는 교역 품목 수는 무려 1850개에 달한다. 이는 미국 503개, 일본 438개와 비교할 때 압도적이다. 우리 산업의 목줄이 중국에 잡혀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큰 위험 요인이다.

중국의 기술 굴기 등 산업 경쟁력 강화도 우리 경제엔 큰 악재다. 과거 중국은 우리나라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조립가공해 수출하는 방식으로 한국 산업에 큰 이득을 안겼으나 중국이 자체 경쟁력을 키우면서 이런 이점이 사라지고 있고, 이는 무역에서 현실화했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18년 26.8%였으나 2022년에는 23%까지 축소됐다. 중국시장에서 한국 제품 점유율은 지난 2015년 10.4%에서 작년엔 7.4%로 낮아졌다. 전통적으로 중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냈지만 분위기는 급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무역 흑자는 지난 2013년 628억 달러에서 작년엔 12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올해는 1분기에만 무역적자 규모가 79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의 기술 굴기는 무역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첨단 기술 산업의 무역수지 흑자는 2018년 384억 달러에서 작년엔 129억 달러로 급감했다. 석유화학, 정밀화학 분야의 무역수지흑자도 2018년 262억 달러에서 작년엔 39억 달러로 줄었다.

양평섭 대외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니어재단이 출간한 '시진핑 新시대 왜 한국에 도전인가?'에서 "한중 수교 이후 30년간 우리가 경험한 양국 경제관계는 더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진입했다"면서 "한중 경제협력에서의 과거 '중국 편승 전략'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양 선임연구위원은 "그렇다고 시장으로서 중국의 역할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한중 경제가 미중 전략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한중 경제협력의 재균형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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